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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이 개성을 찾다가 오히려 개성을 잃어버린 현재가 된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묻는다. |
어떤 곳에서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평생 떠돌았다. 정착할 만하면 거처를 옮겼다. 나의 집은 거리였고 나는 길따라 부는 바람처럼 살았다.
집만이 아니었다. 온라인 거처라고 할 수 있는 블로그/웹페이지도 마찬가지였다. 한 군데에서 눌러 앉아 콘텐츠를 쌓아갈 법도 한데 매번 부수고 옮겨댔다. 마치 비버(Beaver)처럼. 만들면 부수고 부수어지면 다시 만드는 일련의 순환 고리에 갇힌, 어떤 면에서는 스스로 시시포스가 되기로 선언한 것 같은 생활의 연속이었다.
시선에 갇히는 일
나는 나에게 갇혀 지냈다. 내가 원하는 롤모델대로 나의 상황과 주변 조건이 톱니바퀴 물리듯 아귀가 맞아 돌아가지 않으면 멈추었다. 나의 이상향에 나의 정신은 갇혀서 매번 하고 싶다 했던 일이 공상만으로 그치는 일이 잦았고, 실제로 실행에 옮기더라도 얼마 가지 않아 부수고 없애기 일쑤였다.
마이클 거베이스는 말한다. "'나는 운동선수다, 나는 음악가다, 나는 (어떤) 수행자다' 이런 말은 '내가 누구인지'와 '내가 무엇을 하는지'를 하나로 압축해버립니다." 라고. 나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행동과 그 행동의 결과물만이 자신의 정체성으로 남는 것. 그게 무한 경쟁 사회가 만드는 하나의 모순된 결과라고.
내가 하는 행동이 나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 그 자체가 나를 설명하는 것. 누군가의 평가나 시선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이 자신을 말해주는 것. 그게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는 비결이다.
중요한 건 정의가 아니라 꾸준함
보다 더 중요한 건 스스로에 대한 정의, 자신이 만든 것이 얼마나 독특한 개성을 가지는지, 차별성이 있는지, 시장에 먹힐 만한 컨셉인지 등등이 아니라 무엇이 되었든 꾸준히 하는 것임을 점점 더 느끼고 있다. 현재 수백만 명에게 환호를 받는 창작자도 처음에 만든 결과물과 현재 결과물은 천양지차임을 바로 알 수 있으니까.
결국은 실행하면서 수정해나가야 한다. 실험은 창작과 동행해야 한다. 실험과 창작을 분리할 일은 아니다. 아무것도 창작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현재까지 살아오면서 느꼈던, 그때그때의 감정과 현실, 생각, 만들고자 했거나 만든 것을 꾸준하게 쌓아두는 것만으로도 작은 동력이 될 수 있다.
무명인을 끝까지 달리게 만드는 건 특별한 보상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무한한 신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일 테니까.
